이 이야기는 지금으로부터 30년은 족히 전인 나의 아주 젊은 날로 돌아간다. 그 시절에 어떤 계기가 있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으나, 아무튼 그때의 나는 미용사 자격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헤어샵을 창업하려면 미용사 자격증은 당연한데, 그때는 피부관리실과 같은 뷰티 업종에도 미용사 자격증이 있어야 했다. 지금은 자격증 시험이 분야별로 나누어진 것 같지만, 당시에는 그 자격증 하나가 일종의 미용업 마스터키였다고나 할까.
마침 뷰티업에도 관심이 있었던 때라 미용사 자격증 도전에 대한 열의 자체는 분명 있었던 것 같고, 그래서 무슨 자격증이든 일단 많이 가지고 있다 보면 선택의 폭도 그만큼 넓어지게 될 거라고 하는 말들에 귀가 쉽게 솔깃했다. 하여 그렇게, 젊은 날에 시간을 조금이라도 바삐 보냈다는 흔적을 남길 겸 나의 미용사 자격증 도전기는 시작되었다.
당시의 나는 그래도 눈썰미가 없진 않았던지 배우는 속도가 상위권이었고, 그 덕분에 필기와 실기도 초고속으로 패스해서 단기간에 자격증을 손에 넣었다. 하지만, 거기까지가 다였다. 자격증이 곧 실력은 아닌 것이다. 어떤 자격증이라도 연결성이 중요해서, 제 역할을 다 하려면 현장에서 배우고 스스로 녹슬지 않게 노력해야만 그것은 제 가치를 비로소 인정받는다. 그렇지 않다면, 자격증이라는 것은 사실 있으나 없으나 똑같다.
그러나 당시에 나는 창업을 할 정도로 용기가 많지 않았고, 제반 사정도 여의치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썩히기도 아깝고 해서 다만 주변에 만만한 (좋은 뜻) 사람 위주로 나의 천연 가발이 되어주길 원했다. 그리고 그 첫 대상이 된 사람은 바로 완벽한 내 편인 불쌍한 남편이었다.
사실 직장인인 남편이라 마냥 쉽게 머리를 내게 맡겨보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만에 하나라도 피를 보거나 삐꼬가 나는 날에는 근 보름이 넘는 날을 움츠리고 다닐 판이니 말이다. 그런데 역시 남편은 내 편이더라. 괜찮단다. 맘 편히 자르라며 남편은 내게 머리를 내밀어 줬다.
이 세상에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은 없는 법이다. 그리고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바리깡이 내 마음처럼 되지 않았었다. 사실 실기 시험에도 바리깡 실기는 없기도 했지만, 아무튼 정말 쉽지 않았다.
이후 남편 얼굴 볼 때마다 내가 먼저 땅이 꺼져라 한숨 내쉬며 근처 미용실에 가서 정리하고 오라 했지만, 남편은 한사코 괜찮다고 했다. 어찌저찌 내가 겨우 등 떠밀어 보내 유경험자의 손을 빌려 조금 나은 수준이 나중에는 되었지만, 그런 일을 겪고도 이발할 때가 되면 내게 계속 머리를 맡기는 남편을 보며 내심 참 무던하다고 생각하면서도 고마웠다. 물론 지금은 좀 귀찮아지긴 했지만.
이래저래 그 한 번이 두 번 되고, 지금은 돌아가신 엄마, 아버지와 주변 분들도 나중에는 시간이 되어 타이밍만 맞으면 커트도 해주고 파마도 해드리곤 했다. 그러나 결국 그 자격증을 본격적으로 써볼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단지 아이를 낳아 기르며 마치 인형 놀이를 하듯 요래저래 머리를 모양 내며 기분만 느껴 보았고, 요즘 들어서는 고물가 시대에 남편 커트 비용만큼은 확실히 절약하며 살고는 있다는 것에만 만족할 뿐이다.
살다 보면 계획이 수정되고 뜻하지 않은 일이 본업 되는 일도 허다해서, 옛날에 따놓은 자격증을 보며 많은 생각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마냥 싫거나 나 자신에 실망할 필요까진 없는 것 같다. 그냥 옛날에 내가 그랬구나-라며 그때가 그리워지는 요즘이다.


